林森의 招待詩 - 갈비 굽는 마을

林森의 招待詩

림삼 | 기사입력 2024/04/20 [07:42]

林森의 招待詩 - 갈비 굽는 마을

林森의 招待詩

림삼 | 입력 : 2024/04/20 [07:42]

 

 

- 林森招待詩 -

 

갈비 굽는 마을

 

오랜만에 열리는 고등과 동창회 날.

회비는 비록 외상이라

눈총받을 처지지만

기왕지사 점심부터 내쳐 굶은 김이니

오늘만큼 어디 한 번

허리띠 풀러놓고 배터지게 먹어보자.

홍콩 왕래 수십차례

죽여주게 마셔보자.

 

실상인즉 이게

얼마만에 구경하는 남의 살이냐?

게다가 상큼한 소주병 지천으로 널려있어

미각 더욱 돋구는데,

술 익는 마을이나 한 소절 뽑으면서

너 한 숟가락

나 한 절맹이

채곡 채곡 채워 넣자.

 

용빼는 재주 없는

허풍선 글쟁이 팔자.

마르고 닳도록 궁핍 벗어나지 못해

땟국만 줄 줄 흐르던 뱃가죽,

오냐, 오늘 임자 만났구나!

기름기로 도배하고,

뼈 속 골골이 지방질 배달시키고,

얼근히 취기 올라 의기양양 바라보니

눈 아래 만물일랑

돈짝만 하구나.

 

어차피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

호기 있게 떠들고

왕허세 부리거늘,

회비도 안 낸 걸 어느 놈이 알아채랴,

탁자 밑에 슬쩍 감추인

비닐봉진 또 뉘 알랴.

나 한 입에 마누라 치 한 점,

나 한 입에 딸년 거 한 점,

나 한 입에 아들놈 몫 한 점....

봉지가 배불러가누나.

 

큰 입 더 찢어져라

상추쌈 들락 날락,

부지런한 손놀림 따라

뱃속이 그득해질 때

염치없는 눈 돌리며

봉지 또 하나 쌓여가고

기분도 게 좇아서 묵직허니 춤추고-

그런데도 상다리는

아직까지 푸짐하다니,

 

이슥한 밤 내 집에선

목빠지게 기둘리던

온 식구 깨어 앉아

오손도손 도란도란,

능력 있는 잘난 가장

입 모아 칭송하며

후라이판 재탕 삼탕

갈비 파티 벌릴테지.

 

생각만 하여도 흐뭇해져 오느니

저절로 헤벌쭉 벌어지는 입

음흉히 숨기고,

마지막참 파장 무렵 너스레 떨며

반줏거리 소주 한 병

식후 연초 담배 한 갑

꿰어차고 신발끈 매면

그걸로 만사 오케이.

 

갈비 굽는 마을에

동창회가 익어간다.

-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어라.

 

(동창회가 한 해에 대여섯 차례 있기를

하늘에 간절히 빌며)

 

- ()의 창() -

 

제법 긴 시다. 실상 이걸 시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주 오래 전 우중충하던 어느 시절의 고백이다. 한동안 소소한 일상이나 보여지는 사물, 그리고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을 보이는대로, 느끼는대로 적었던 적이 있다. 소위 서사시라는 이름으로 주저리주저리 읊으면서 방랑시인 김삿갓흉내를 내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이 시도 그 무렵 지었던 듯 한데, 불현듯 추억록을 뒤적이다가 눈에 띄었다. 심심파적으로 읽어 내려가다가 불쑥 솟구치는 눈물, 그리고 슬쩍 목이 메어오기에 잠시 눈을 감고 회상해본다. 참 지지리도 못난 사람 때문에 생고생으로 살아온 피붙이들에게 새삼 미안한 마음이다.

 

많은 세월이 흘러서 지금, 퍽 나아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이 살아온 글쟁이 팔자에 변변히 호강은 커녕, 되레 나이 들어서도 자녀들에게 걱정만 끼치면서, 남겨진 목숨줄 아등바등 이어가고 있는 처지인지라 호기있게 내세울 건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며가며 걷어먹였던 기억도 소중한 과거라 여기며 스스로에게 위안을 건넨다. 너스레떨면서 시작하는 코너가 오늘 따라 사람 냄새나는 인정의 공간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살면서 기쁘고 행복한 일만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여건에 만족하면서 오늘을 누리는 사람도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어쩌면 가장 힘겹고 버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세상에서 자기만큼 어려운 난관을 많이 헤치면서,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주위에는 너무도 많이 있다. 행복이라는 파랑새는 남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꿈이며 혜택이라고, 애저녁에 작은 기대조차 포기한 사람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본인이 세상의 주인이며, 모든 기회는 자신이 작심하는대로 열려질 거라는 확신과 도전의지가 있다면 불가능할 것이 없으련만, 고작 몇 번의 시도와 노력으로 삶의 모든 과정과 시험을 다 겪었노라고 하면서 평가하려고 하는 자체가 오만이며 비겁한 자기기만임을 알아야 한다. 비겁한 약자들의 핑계거리를 명분으로 믿으면서 자기 합리화에 여념이 없는 실패자들의 모습을 우리는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나 지원만을 바라면서 맥놓고 하늘을 바라보는 무능력자들도 참 많다. 한심한 일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행적을 거울로 삼아 잘못 간 길은 얼른 수정하고, 그릇된 판단은 빨리 변화시키고, 반성은 하되 후회는 하지 않을 삶의 목표를 다시금 설정하여 힘을 내서 도전해보자. 부족할 게 무에 있는가? 단지 남들이 한 번에 이룬 성공을 두어 번 돌아서 조금 뒤늦게 도달하게 될 뿐이거늘. 어차피 가야 할 성취의 길에서 보람과 행복과 충족의 내일이 활짝 웃으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그러니 가자. 그 길로 가자.

 

어차피 한 평생 살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힘든 상황도, 큰 어려움도 겪어야 하는 게 숙명이다. 그리고 그걸 참고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주변의 작은 관심 하나, 따뜻한 말 한 마디만으로도 될 수 있다. ‘세링그레스는 말했다. “아버지가 되기는 쉽다. 그러나 아버지답기는 어려운 일이다.” 세상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누구라도 인간관계를 통해서 외부와 소통한다. 그리고 그 소통을 원활하게 원만하게 함으로써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갖추어간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관계가 결코 녹록치만은 않다. 서로간에 소통의 부재로 인한 오해와 불신이 쌓이기도 하고, 그렇게 유발되는 시기와 분쟁이 일상을 쉽지 않은 색깔로 물들이고 있다. 비단 승리를 위한 투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처절한 싸움에 몰두하고 있다. 삶을 마치 전투인 양 여기면서 항상 공격적인 자세로 외부에 칼을 겨눈다. 그리고 평생 그 버릇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필자는 예전에 강연을 할 때마다 ‘(5-3=2)’ ‘(2+2=4)’라는 공식의 법칙에 대해 자주 거론했었다. (5-3=2)어떤 오해(5)라도 세 번(3)을 생각하면 이해(2)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고. (2+2=4)이해(2)와 이해(2)가 모일 때 사랑(4)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오해할 때가 있고 오해를 받기도 한다. 오해는 대개 잘못된 선입견, 편견, 이해의 부족에서 생기고, 결국 오해는 잘못된 결과를 가져온다.

 

(5-3=2)라고 하는, 아무리 큰 오해라도 세 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는 풀이가 새삼 귀하게 여겨진다. 사실 영어로 이해를 말하는 ‘understand’밑에 서다라는 뜻으로, 그 사람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 곧 이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해와 이해가 모여 사랑이 된다는 말도 너무 귀하지 않은가? 단순하게 말하자면 사랑은 이해인지도 모른다. 따뜻한 이해와 이해가 모일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낚시 바늘의 되꼬부라진 부분을 미늘이라고 부른다. 한 번 걸린 고기가 빠져 나가지 못하는 것은 미늘 때문이다. 가까운 타인으로 살아가지만 마음 한 구석에 미늘을 감추고 살아가는 우리는 때때로 너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벽 앞에 모두가 먼 타인이 되곤 한다. (5-3=2)(2+2=4)라는 단순한 셈법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서로와 서로를 가로막고 때로는 멀리 떨어뜨려 놓는 온갖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풀어버리고 우리 모두 사랑의 공유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서로 간에 오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참 어줍쟎게 하찮은 일로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상대방이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고, 또 무조건 선입견의 감정으로 오해를 만들기도 한다. 일단 오해라는 엉킨 실타래가 생겼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이해와 사랑으로 서로 풀어 나갔으면 좋겠다. 이해란 정확히 말하자면 깨우침을 의미한다. 어찌 사람이 사람에 대해 정확히 깨우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럴 수는 있다. 사람을 좋아하면 그 사람의 결점까지 다 좋아 보이는 거 말이다.

 

사람을 향한 이해는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선후가 다르긴 하지만. 그런데 정말 필자의 경우는 언제나 변함없이 결과가 그렇더라는 걸 실감한다. 그래서 무조건 사람을 좋아하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어디 마음이란 것이 쉽사리 우리 의지대로 되어지는가? 가끔은 그 노력이 무색하게, 제어가 되어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것이 아니함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모든 걸 좋게 보기 위해 많이 애쓰곤 한다.

 

모든 자연을 보자.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가고 나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듯이, 모든 자연은 그렇게 떠나며 보내며 산다. 그러니 하찮은 일에 집착하지 말자. 지나간 일들에 가혹한 미련을 두지 말자. 스치고 떠나는 것들을 반기고, 찾아와 잠시 머무는 시간을 환영하자. 그리고 비워 두자. 언제 다시 가슴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웃는 모습은 신선하다. 당신의 웃음은 마술을 부린다. 당신의 웃음은 은은한 향을 지녔다. 그 향기에 취해 하루라도 당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의 웃음은 내게 사랑이다. 웃음 소리가 사랑의 시작이 되었고, 웃음 소리가 가슴을 설레게 했다. 당신이 웃어주면 마음은 햇살이다. 언제까지나 당신이 웃어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바로 당신의 그 아름다운 웃음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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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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